이사 가기 전날

어릴 때부터 이사를 많이 다녔다. 초등학교때는 거의 1년에 한 번 꼴로. 중학교도 두 학교를 거쳤고 고등학교도 두 학교를 거쳤다. 이런식이면 친구가 더 많을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. 잠시 친했다가 헤어져야 했고, 그 잠깐의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할 만큼 내 끈기가 대단치 않았다. 오히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아야 하는 부담 때문에 Here and Now에 몰입했다. 그래서 난 초등학교, 중학교, 고등학교 동창이란게 없다. 언제나 그들은 새 친구에 밀려났다.

어릴 때는 이사를 한 첫날 밤, 잠자리에 누워서 바라보는 천장 만큼 낯선 것이 없었다. 처음 보는 벽지 무늬, 누워있는 방향이나 각도등이 모두 낯설어, 남의 집에 와서 누운것처럼 외로웠다. 거기에 누운 것은 전혀 내 의지가 아니었다.

내일 모레 이사를 가야 한다. 이사라고 하긴 거창하고, 이동이라고 해야 할까. 어쨌든 침대, 옷가지를 옮겨야 하니 그냥 보따리 싸는 정도라고 말 할 수는 없다. 어른들에게 끌려 이사를 다니는 어린아이가 아니니 이 모든 이동은 나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. 오랫동안 붙박이로 있다가 이사를 하는 터라, 이 변화의 디테일을 느끼려고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다. 허나, 어릴 때의 감상적인 기분은 더 이상 느껴지지가 않는다. 낯설고 외로운, 황야에 혼자 서 있는 것 같은 고독이 없다. 난 그냥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를 덤덤하게 하고, 덩치 큰 짐들은 어떻게 옮겨야 하는건지에 더 골몰하고 있다. 현실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들때문에 감상에 젖을 틈이 없는데, 오히려 어떻게 하면 감상에 젖어볼까, 그 외로움을 다시 느껴볼까 마음이 그렇게 쏠린다.